디엔비엔 푸 전역: 1954년 4월 18일, 4일간의 적 포위 공격 후, 제141연대는 제105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군은 급히 기지에서 철수했습니다. 공항 북쪽을 방어하던 제105기지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적군 측: 4월 18일, 중부 지역 부사령관인 비기아르는 제6낙하산대대의 1개 중대와 제1모로코대대의 1개 중대를 모집하여 105기지로 진군을 시작하여, 그곳에 있는 외국인 군단과 함께 무옹탄으로의 후퇴를 조직하고자 했습니다.
정확히 2시에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공항에 도착했을 때, 최전선 방어선이 너무 잘 정비되어 무모한 진격은 무의미한 희생이 될 것이 뻔했기에 병력은 막대한 손실을 입었습니다. 행진은 완전히 진전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새벽녘, 프랑스군 일부는 공항 가장자리 배수로에 막 설치된 공병 진지로 후퇴해야 했습니다. 이 참호는 베트민군의 포격을 어느 정도 막아줄 수 있었지만, 이미 물이 차 있었습니다. 7시 30분, 비게아르는 디엔비엔푸에서는 감히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탈출구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므엉탄으로 후퇴하려는 계획은 실패했고, 고집하는 것은 설령 이 불행한 사람들 중 일부를 구한다 하더라도 득보다는 실이 될 것이었습니다.
공격을 받자 C고지 진지의 적들은 뿔뿔이 흩어졌고, 참호 속의 아군 충격 부대는 저격총을 사용해 적을 사살했습니다. 사진: VNA
아침 안개가 적의 공격으로부터 그들을 부분적으로 보호해 주었지만, 수류탄 일제 사격과 부상당한 상병 한 명이 지원 사격을 위해 뒤에 남아 기관총 한 발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병사들은 아군 참호를 뛰어넘었고, 일부는 당황하여 프랑스 요새를 향해 돌진했습니다. 그때서야 아군 병사들이 사격을 개시했습니다. 요새 사령관 비게아르가 10시 정각 위게트 2에 병력을 집결시켰을 때, 중대는 전사 106명, 부상 49명, 실종 79명의 피해를 입었습니다. 위게트 6의 장교 16명 중 단 5명만이 생존했습니다.
4월 18일 밤, 4일간의 적 포위 공격 끝에 141연대는 105기지를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적군은 급히 기지를 버리고 도주했습니다. 공항 북쪽을 방어하던 105기지는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때, 308사단 88연대는 무옹탄 공항을 가로질러 참호를 파고 공항 동쪽에서 312사단 141연대와 접촉을 시작했습니다. 36연대는 또한 206번 요새의 포위 진지를 강화하고 있었습니다. 206번 요새는 중부 지역 북쪽의 비상 진지가 되었습니다. 이 진지는 제13외인부대 반여단 4중대가 보호하고 있었습니다. 이곳의 외국군단은 매우 격렬하게 저항했습니다. 박닌과 박장 두 성의 병사들은 106번 요새를 파괴한 경험이 있었고, 포위 전술을 고수했으며, 최소한의 병력과 무기 손실로 승리하기로 결심했습니다.
36연대의 "침략" 경험이 전선 전체에 퍼져 있었다면, 이번에는 141연대가 "포위"와 "저격" 경험을 모든 부대에 신속하게 전파할 차례였습니다. 전선 전체가 "저격 경쟁" 운동으로 들끓었습니다. 보병들은 접근하여 모든 적군 병사를 저격했습니다. 야포와 박격포는 근접 배치되어 모든 적 포진지를 저격했습니다.
이 시기에 후방에서 많은 신병들이 병력이 부족한 부대를 보충하기 위해 전선으로 나왔습니다. 이 신병들 중에는 전선으로 물자를 운반하다 독립 후 귀국을 자원하여 입대하는 청년 자원병과 노동자들도 많았습니다. 디엔비엔푸에서 "호 아저씨의 병사"가 되어 싸우겠다고 자청하는 학생들도 많았습니다. 적을 포위하고 저격하는 과정은 신병들을 현장에서 바로 훈련시키는 과정이기도 했습니다. 4일 만에 네 개의 저격조가 110명의 적을 사살했고, "저격수" 한 명은 15발의 총알로 13명의 적을 사살했습니다.
탄빈/qdnd.v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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