숭정제 9년(1636년), 중국 광저우시 판위구의 한 마을에 며칠 동안 비가 계속 내렸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큰 벼락이 땅을 내리치며 굉음을 냈습니다. 그 후 비가 그쳤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와서 보니 땅에 큰 구멍이 나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이 용감하게 내려와 아래에서 매우 큰 고대 무덤을 발견했습니다. 무덤 안에서는 금, 은, 옥, 그리고 희귀한 재료로 만든 많은 골동품들이 발견되었습니다. 황제의 옷을 입은 금상 두 개도 발견되었고, 그 아래에는 은상 24개가 놓여 있었는데, 그중에는 문관 12명과 무관 12명이 있었습니다.
뜻밖에도 소문이 퍼지자마자 마을 안팎에서 사람들이 몰려들어 보물을 훔쳐 가려고 했습니다. 늦게 도착한 누군가는 아무것도 찾지 못하고 무덤 주인의 시신을 꺼내 분노를 표출했습니다. 무덤 안의 모든 것을 약탈한 후, 무덤은 무참히 버려졌습니다.
1966년까지 이 영묘는 방공호로도 사용되었으며, 오늘날 마을 사람들은 이 영묘를 가축을 기르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고대 황제의 무덤은 보물을 모두 빼앗긴 후 가축 농장으로 개조되었습니다. (사진: 소후)
2003년이 되어서야 광저우 정부는 판위구 계획을 확장하기 위해 이 지역의 문화유적을 조사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고고학자들은 판위구 곳곳을 돌아다니며 수색 작업을 벌였고, 마을 주민들의 안내 덕분에 고분을 발견했습니다.
고고학팀이 도착했을 때, 고분에 남아 있던 유일한 석비는 "고조 황제, 애삭반 대제(高祖帝, 愛朔半大帝)"라는 글이 새겨진 비석뿐이었습니다. 비석의 이름과 비문으로 미루어 보아 이 비석은 남한 고조 황제 유연(劉燕)의 무덤으로 추정됩니다. 유연은 오대십국 시대 남한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고서에 따르면, 유연은 말년에 극도로 폭군적이고 잔혹했습니다. 그는 종종 포로의 사지를 절단하고, 독사를 풀어 물어뜯는 등 잔혹한 형벌을 자행하며 즐거움을 추구했습니다. 또한, 유연은 병사들에게 백성들의 금과 은을 모두 약탈하여 조각상을 주조하고 장신구를 제작하여 사후에 무덤에 안치하도록 명령했습니다. 이로 인해 당시 백성들은 이 황제를 몹시 원망했습니다.
유연왕의 무덤이 발견된 지역 주민들은 이 소식을 듣고 그에게 혐오감을 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무덤을 복원하여 국가문화재로 지정했습니다.
꾸옥타이 (출처: 소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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