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한 가정은 자선 활동을 합니다
라오바오(Lao Bao) 마을 시눅(Xi Nuc) 마을에서 열린 자선 여행에 참여했을 때, 허리에 의료용 벨트를 두르고 손발을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한 여성의 모습이 제게 깊은 인상을 남겼습니다. 시눅 마을 부녀회장인 응우옌 티 호앙 옌(Nguyen Thi Hoang Yen)에게 물어보니 그 여성의 이름이 투 상(Thu Sang)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척추 수술을 받기 위해 입원하기 전, 상은 한 자선가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300끼의 식사를 준비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퇴원하자마자 약속을 지키기 시작했고, 쉴 새 없이 자신을 채웠습니다. 옌(Yen)은 "상은 시눅 마을 사람들을 위해 여러 번 찾아와 선물을 주고,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그녀는 우리의 기쁨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야외 주방"에서 투 상 씨는 한때 자선 급식에 "빚을 졌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녀는 남편을 따라 중부 고원 지대로 사업을 하러 갔습니다. 부부는 열심히 일했지만, "풍작에 물가가 낮다"는 상황에 자주 직면했습니다. 한번은 말라리아가 발병해서 상 씨는 거의 일어설 수 없었습니다. "주머니에 얼마 남지 않은 돈으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그때 자선 급식이… 저를 구해줬습니다."라고 상 씨는 말했습니다.
상 여사, 환자들에게 자선쌀 전달 - 사진: QH |
투 상은 병에서 돌아온 후, 두 번째 출산을 허락해 준 삶에 감사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가난한 농부인 그녀에게는 쉽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녀는 집으로 돌아가 라오 바오 마을을 선택했습니다. 당시 가족의 어려운 상황을 보고 지방 정부는 자선 단체를 짓는 데 드는 비용의 일부를 지원했습니다. 그 행동에 상은 매우 감정이 북받쳐 라오 바오에서 디엔 산까지 버스를 타고 오가며 무역을 하고 경제를 되살리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혔습니다. 상은 이렇게 털어놓았습니다. "'가난하다'는 단어는 다섯 글자인데, 철자를 쓰는 데 십여 년이 걸렸어요. 먹고 입을 걱정이 점차 가라앉자 삶에 감사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상 씨는 자신의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매일 소액의 돈을 모았습니다. 큰 포부는 없었지만, 주변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부터 시작하기로 했습니다. 상 씨가 주는 선물은 쌀 몇 킬로그램, 라면 한 상자, 새 셔츠 한 벌 정도에 불과했습니다. 받는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기쁨을 보며, 그녀는 마치 평생의 사랑을 찾은 듯한 기쁨을 느꼈습니다. 바로 여기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선물" 프로그램이 탄생했습니다. 상 씨는 매달 사비를 들여 가난한 가정을 위한 선물 20개 정도를 구매합니다. 한 개당 30만~50만 동(VND)에 달하는 금액입니다. 그녀는 지난 6년간 이 선행을 이어왔습니다.
밥 짓는 데 돈 빌리면 "0동"
몇 달 동안 묵묵히 자선 활동을 해 온 투 상(Thu Sang)의 마음속에는 가장 힘든 시기에 찾아온 따뜻한 밥 한 그릇의 기억이 늘 함께합니다. 그 기억은 그녀가 채식 밥을 지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도록 만든 원동력이었습니다. 시범 기간이 끝난 후, 2022년 초, 상은 디엔산(Dien Sanh) 마을에 "0 VND" 쌀 가게를 열었습니다. 그녀는 매달 4일간 무료 쌀 봉사 활동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두 시골 지역을 자주 오가는 바쁜 사업가에게 자선 식당을 열고 운영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상 씨는 일정에 맞춰 아침 일찍 일어나 시장에 가서 가장 신선한 식재료를 골라야 합니다. 100인분이 넘는 채식 식사를 제공하기 위해 그녀는 열심히 일합니다. 시간을 쪼개어 특별한 손님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요리와 서빙 방법을 조정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식당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기쁨으로 다시 찾아옵니다.
가게를 열 때마다 100명이 넘는 손님을 맞이하느라 애썼지만, 상 씨는 여전히 안심할 수 없었습니다. 그 지역에는 자신을 찾아올 수 없는 장애인, 외로운 노인, 노인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상 씨의 마음속에는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자선 식사를 가져다주고 싶다는 마음이 싹텄습니다. 그래서 식사 횟수를 늘리고, 시간을 내어 일부 가정에 직접 음식을 가져다주기로 결심했습니다. "맑은 날에는 견딜 만하지만, 폭풍이 올 때마다 길이 더 길어집니다. 사람들이 저를 기다리고 있다는 생각에 더 큰 의욕이 생깁니다."라고 상 씨는 말했습니다.
투 상 씨는 "0동" 식당을 연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더욱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어려운 환자들이 종종 그녀에게 문자와 연락을 통해 어려움을 털어놓습니다. 투 상 씨가 병원과 의료기관에 "0동" 식사를 제공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낯선 사람의 관을 돌봐주세요
몇 달 동안 쉼 없이 자선 활동을 하던 투 상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관조차 마련할 수 없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여러 번 가슴이 아팠습니다. 그들의 울음에는 슬픔과 무력감이 뒤섞여 있었습니다… 여성으로서 상은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특히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해 관을 마련해 주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관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그녀는 모든 것을 제쳐두고 그곳으로 향했습니다. 돌아온 상은 글을 써서 소셜 미디어에 올리고 모든 사람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망설임을 극복하고 모든 동지와 자선가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충분한 돈을 모은 후에야 마음이 놓였습니다. 지금까지 상은 관을 살 수 있는 기금으로 거의 20건의 사례를 도왔습니다. 긴급 지원을 한 후, 그녀는 유가족들을 돕기 위해 다시 돌아왔습니다.
삶이 아직 어려운데도 투 상 씨가 부지런히 자선 활동을 하는 모습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기고, 심지어는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그런 모습에 투 상 씨는 가끔 속상해합니다. 하지만 그녀는 억만장자가 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매일 그녀의 따뜻한 마음이 그녀를 재촉하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그녀는 아주 특별한 억만장자, 친절의 "억만장자"가 되었습니다.
광히엡
출처: https://baoquangtri.vn/xa-hoi/202510/ti-phu-cua-su-tu-te-32e08d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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