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학교 다닐 때부터 글을 쓰고 메모하는 습관이 있었어요. 매일 뜬금없는 일들을 일기에 적고, 유용하다고 생각되는 것들, 작은 이야기들, 그리고 떠오르는 시들을 적었죠. 그 당시에는 그게 열정이나 취미라고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냥 쓰고 싶어서 썼을 뿐이죠.
친구들은 제 어린 시절 이야기를 자주 떠올립니다. 우리가 모여서 놀 때면 언제나 제가 이야기를 들려주곤 했죠. 책과 신문에서 읽었던 이야기들이죠. 그 당시에는 책과 신문이 귀했고, 특히 제가 사는 곳처럼 외딴 해안 지역에서는 더욱 그랬습니다.
우리가 접할 수 있었던 유일한 인쇄본은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교과서뿐이었습니다. 이 책들은 학급마다 돌려 읽었습니다. 책 표지가 어떻게 생겼는지, 어떤 무늬가 있는지 우리는 종종 알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책들이 우리 학급에 도착했을 때쯤이면 표지가 다른 종류의 두꺼운 종이로 바뀌었거나, 더 심한 경우에는 겉표지가 없어지고 심지어 책 안쪽 페이지까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우연한 기회에 전업 작가가 되었는데, 그것도 예정된 바는 아니었습니다. 안정적인 직장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당시 신문을 자주 읽었기 때문에 가끔 몇몇 작가들을 만났습니다. 제가 글을 썼다는 소식을 듣고는 기사를 보내달라고 권유했습니다. 처음으로 자르라이 문학 잡지에, 그리고 자르라이 신문에 기사가 실렸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말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그 격려가 제가 더 자주 글을 쓰고 기사를 보내도록 이끌었습니다.
그 후 성(省) 문예협회 회원이 되었고, 매년 자르라이 신문 기고자 대회에 참석하며 동료 작가들을 만나 배우고, 글을 쓰는 즐거움도 배가되었습니다. 글을 쓸 때마다 더욱 의식하게 되었고, 글을 쓸 때마다 더욱 신중하고 꼼꼼하게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는 종종 읽고 쓰는 것을 지식을 쌓는 여정이라고 부릅니다. 제 안에 처음으로 글을 심어주신 분은 아버지였습니다. 아버지는 제가 어디를 가든 책을 사주며 독서 습관을 기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지금도 일흔이 넘으신 아버지는 여전히 제게 흥미로운 책을 사주십니다.
아버지처럼 학교 교육을 많이 받지는 않았지만, 이상하게도 깊이 있게 읽고 폭넓게 이해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아버지는 박식하시고 여러 분야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하실 수 있습니다. 책을 자주 읽고 연구하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배운 것을 바탕으로 우리를 인도하셨습니다. 아버지뿐만 아니라 그 세대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독서와 독학의 습관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양한 분야와 직업에서 일했습니다. 군인, 기술자, 의사, 심지어 육체 노동자까지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었지만… 악기를 연주하고, 시를 쓰고, 음악을 작곡할 수 있었습니다.
가끔 저는 아이들에게 책을 선물로 주곤 합니다. 아이들이 언어의 세계 에 참여하도록 격려하기 위해서죠. 책은 소리를 낼 필요도 없지만, 사람들이 조용히 한 장 한 장 읽을 때 긍정적인 에너지가 전달되는 것을 느낄 수 있게 해 줍니다. 책은 누군가의 도움 없이도 상처의 기복을 달래주고 감싸 안아주는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책은 사람들이 존재의 가장 깊은 곳까지 비추는 빛을 마주할 때, 다르게 생각하고 살 수 있게 해 줍니다.
책을 읽는 사람들은 깊은 이해와 폭넓은 사고를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과 소통하는 것은 마치 귀중한 책을 읽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읽으며 얻은 지식을 마음속에 쌓아 올리는 것은 마음을 키우는 방법입니다.
누군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아이를 설득하여 마법의 문턱을 넘어 도서관으로 인도하는 순간, 우리는 아이의 삶을 영원히,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꿔놓을 수 있다." 저는 제 경험을 통해 이 말이 사실임을 증명했습니다.
출처: https://baogialai.com.vn/nuoi-chu-duong-tam-post329603.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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