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동치제는 2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의 황후 알루덕이 임신했지만 서태후에 의해 강제로 살해당했다는 소문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전설일 뿐이며, 공식적인 역사서에서는 그 어떤 증거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사실 동지와 아루덕 황후의 혼례는 동지 11년, 즉 1872년에 치러졌습니다. 동지 황후는 13년, 즉 1875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황후를 맞이한 날부터 세상을 떠날 때까지 동지 황후는 후궁과 미녀들과 함께 2년 넘게 후궁 생활을 했습니다. 그러나 동지 황후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의 자녀에 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았습니다.
통트리 황제의 초상. (사진: 역사적 인물)
동지가 죽은 후 광서가 왕위에 올랐습니다. 그는 황후 한 명과 후궁 두 명, 그리고 수천 명의 각양각색의 아름다운 궁녀들을 거느렸지만, 광서에게는 아직 자식이 없었습니다.
광서는 광서 14년, 즉 1888년에 결혼했습니다. 광서 24년에 그는 서태후에 의해 영대에서 감금되었는데, 이는 결혼 생활이 10년 동안 지속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많은 역사서에서 광서와 진비의 결혼은 매우 행복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진비는 광서가 후계자를 낳는 것을 도울 수 없었습니다.
1898년, 마우 투앗 쿠데타 이후, 꽝 투는 투 히에 의해 도안자이에서 10년간 투 히에 의해 감금되어 사망할 때까지 수감되었습니다. 이 기간 동안 디엡 학 나 라 황후 또한 꽝 투를 따르고 섬겨야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도안자이에서 10년간의 투옥 생활과 의복 부족으로 고통받던 꽝 투는 38세의 나이로 자식 없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광서제는 진비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했지만, 자녀가 없었다. (사진: 소후)
광서제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푸이 황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는 두 살에 왕위에 올라 6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총 다섯 명의 아내를 두었지만, 청나라 마지막 황제에게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청나라의 마지막 세 황제가 멸종하게 된 원인은 무엇이었을까?
과학자들은 청나라 황실이 근친혼 제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초기 여진족은 인구가 약 3만 명에 불과했지만, 몽골족은 기병이 40만 명이 넘었습니다.
여진족은 영토를 확장하기 위해 몽골 여성과 결혼하여 몽골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그 대가로 여진족은 자신의 딸들을 몽골 부족 귀족에게 시집보냈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동맹을 강화하면서 두 부족 간의 결혼 관계는 점점 더 복잡해졌고, 근친상간으로 이어졌습니다.
근친상간 외에도 청나라의 마지막 세 황제가 죽은 데에는 다른 많은 이유가 있었습니다. (사진: 소후)
결혼 관습의 영향 외에도, 마지막 세 황제의 멸망은 이 세 황제의 생활 방식에도 달려 있었습니다.
통트리 황제는 21세의 나이에 매독으로 죽은 악명 높은 타락한 황제였습니다.
광서는 심각한 정자 유출증으로 아이를 가질 수 없었습니다. 그는 죽기 1년 전인 1907년, 33세의 나이에 이 병을 시인했습니다.
푸이 황제는 회고록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푸이 황제가 열 살밖에 되지 않았을 때, 환관들은 왕을 섬기지 않으려고 매일 밤 궁녀들을 밀어 시중들게 했습니다. 다음 날 잠에서 깨어났을 때 어지러움이 나고 해가 지며 모든 것이 노랗게 보였습니다." 이 회고록을 바탕으로 역사가들은 푸이 황제에게 후사가 없었던 이유가 발기부전 때문이라고 추정합니다.
꾸옥타이 (출처: 소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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