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끔찍한 폭풍우로 인해 700여 명의 승객을 태운 SS 바이타르나호가 실종되면서 지금까지 풀리지 않은 비극적인 미스터리가 되었습니다.
Báo Khoa học và Đời sống•04/09/2025
여객용 증기선 SS 바이타르나(SS Vaitarna)는 1882년에서 1885년 사이 스코틀랜드 그레인지머스 조선소에서 건조되었습니다. 이 선박은 길이 52m, 폭 8m, 배수량 292톤으로 이 회사 최초의 증기선이었습니다. 사진: 어뮤징플래닛. 봄베이 증기선 운항 회사가 운항하는 SS 바이타르나호는 커치 왕국의 만드비와 봄베이를 오가는 여객과 화물을 실어 날랐습니다. 사진: 어뮤징플래닛.
증기와 돛을 모두 동력으로 사용했던 SS 바이타르나호는 1880년대의 놀라운 발명품인 전기 조명도 장착했습니다. 여러 가지 현대적인 개량에도 불구하고, 이 배는 장거리 항해에 적합하지 않았습니다. 사진: indianveritas.in. SS 바이타르나호는 날씨가 좋을 때는 먼 바다로 항해하는 대신 해안 가까이에 머물며 항구에서 항구로 이동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바다가 거칠 때는 배는 종종 바다의 분노를 피해 항구에 정박했습니다. 사진: 인디아타임스 1888년 11월 8일, 인도 서해안을 따라 폭풍이 다가오고 있다는 경고가 발령되었습니다. 경고에도 불구하고 SS 바이타르나호는 출항했습니다. 약 520명의 승객을 태운 이 배는 만드비(Mandvi)를 출발하여 드와르카(Dwarka)로 향했습니다. 사진: 조지 필립/로열 앨버트 기념관/브리지맨 이미지스
드와르카에서 SS 바이타르나호는 항해를 위해 더 많은 승객을 태워 총 탑승 인원을 약 700명으로 늘렸습니다. 배가 드와르카를 떠나 포르반다르로 향할 당시, 폭풍의 중심은 남쪽으로 400km도 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었습니다. 배는 시속 약 16km로 항해하고 있었습니다. 사진: peakpx. SS 바이타르나호가 포르반다르에 도착했을 때 바다는 거칠었습니다. 하지 카삼 선장은 배를 항구로 가져오려 했지만, 악천후로 인해 안전한 항구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사진: stock.adobe.com 그래서 하지 선장은 다가오는 폭풍의 진로를 따라 봄베이로 배를 돌리기로 결정했습니다. 그날 저녁, SS 바이타르나호는 망그롤 앞바다에서 마지막으로 목격되었습니다. 사진: stock.adobe.com
공식 기록에 따르면 사고 당시 SS 바이타르나호에는 승객 703명과 승무원 43명이 탑승하고 있었습니다. 배와 탑승객 전원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습니다. 사진: stock.adobe.com 당국은 SS 바이타르나호와 희생자들을 찾기 위한 수색에 나섰지만, 아무런 성과도 거두지 못했습니다. 오늘날까지도 이 배의 행방은 미스터리로 남아 있습니다. 사진: peakpx.
독자 여러분께서 지진 발생 후 태평양 에 발령된 쓰나미 경보 영상을 시청하시기 바랍니다. 출처: VTV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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