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러스트: Tuan Anh
빌린 방은 푸른 서리가 내린 화단이 점점이 박힌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 잡고 있었다. 마치 꽃비가 막 내린 듯 벽과 돌계단 곳곳에 섬세한 꽃잎들이 떨어져 있었다. 벽돌집들이 나란히 옹기종기 모여 있었고, 이끼와 덩굴, 양치식물로 뒤덮인 돌 틈 사이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반쯤 닫힌 창문 몇 개는 좁은 골목길을 바라보는 몽환적인 눈빛처럼 보였고, 어딘가에서 종소리가 마치 저 멀리 지평선에서 들려오는 듯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갔다. 마치 시간의 날개가 닫혀 오래전에 이곳에 내려앉은 것 같았다.
번화한 도시를 떠나 란은 기차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이 마을에 도착했다. 짐은 가벼웠고, 그보다 더 무거울 수는 없었다. 아마도 그가 가져온 기억들만이 가득했을 것이다. 그 전까지 란은 집주인이 빌려준 방 사진 몇 장을 본 것뿐이었고, 방 안의 네 벽은 새 페인트로 칠해진 듯했다. 현관문 양쪽에는 보라색 달맞이꽃 화분 몇 개가 있었고, 앙상한 장미 덤불 아래 안개꽃에는 작고 늦여름에 익은 열매 몇 개가 피어 있었다. 안개에 짙게 물든 은회색 언덕의 그림자가 그의 뒤로 나타났다. 아마도 이 고요함 때문일 것이다. 란은 작은 언덕 아래 마을에 있는 이 집, 마치 안개 속 요람처럼 머물기로 했다.
란은 여기서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지도 몰랐고, 어쩌면 더 멀리 도시로 이사해야 할지도 몰랐다. 적어도 지금은 산과 언덕의 고요한 공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겉보기에는 강해 보이지만 사실은 연약해 보이는 모든 인연을 조용히 떼어내면서, 란이 그의 인생이라는 또 다른 기차에 올랐다는 사실을 아무도 몰랐고, 그 자신도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지 예측할 수 없었다.
푸른 안개 자욱한 꽃밭 비탈에 안개가 아직 짙게 드리워진 가운데 잠에서 깬 란은 공허함만 느꼈다. 마치 수천 개의 손이 피부를 어루만지는 듯, 산의 차가운 공기 속에 몸을 웅크리고 옛 도시의 잔상이 무의식 속에서 다시 떠올랐다. 그토록 많은 허영심. 그토록 많은 만취. 그토록 많은 술기운. 그토록 많은 긴 눈물. 시작도 끝도 없는 사랑. 그토록 많은 상처받고 잃어버린 청춘. 그토록 많은 나태하고 무의미한 질질 끌림. 란은 마치 긴 이주 기간 끝에 남은 깃털을 막 놓아주듯 모든 것을 뒤로하고 떠났다.
해가 떠오르고 있었다. 란은 살며시 창문을 열고 은백색 커튼을 내렸다. 커튼은 햇살에 섞인 가느다란 연기처럼 가볍게 흔들렸다. 차가운 햇살은 란에게 새로운 것이었고, 방 안으로 스며드는 금빛 조각 하나하나가 그를 조금이나마 행복하게 했다. 길 건너편 창문에서 란은 고목 보리수 그늘 아래 자리 잡은 작은 서점을 보았다. 아마도 현관 간판이 "보리 서점"이라고 쓰인 녹색으로 칠해져 있는 것도 그 때문일 것이다.
몇몇 노인들이 일찍 일어나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계단에서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은 나지막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주로 눈을 마주치며 소통했다. 잠시 후, 란은 한 노인이 손에 체스판을 들고 서점에서 천천히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모두 일어서서 의자를 정리한 후 함께 앉았다.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푸른 이슬 꽃잎이 하나둘씩 떨어졌다. 란은 서점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오래된 서점이었다. 물고기 비늘 모양의 기와는 마치 수채화를 여러 번 그린 듯했고, 보리수 잎은 듬성듬성 떨어져 있었다. 밖에서 안을 들여다보니 책꽂이에 책이 높이와 낮게 쌓여 있었다. 정문 위에는 "반-투-투(Văn-tư-tu)"라는 붉은 글씨가 대문자로 적힌 간판이 걸려 있었다. 입구 근처 책장 위에는 나무 불상이 있었고, 그 옆에는 짙은 노란색 국화가 담긴 꽃병이 놓여 있었다.
근처 집의 징과 굴뚝에서 이른 아침 연기가 피어올랐다. 그 연기는 창밖 위태롭게 매달린 감들을 비추는 햇살 속으로 사라졌다. 란은 눈앞에 펼쳐진 인물들과 풍경 속에 따뜻함과 친숙함으로 반짝이는 무언가가 숨겨져 있음을 깨달았다.
***
란은 도시의 작은 슈퍼마켓에서 계산원으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밤 10시까지 야간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일을 마치면 불을 끄고 문을 닫았습니다. 늪처럼 짙은 어둠이 드리워진 후, 그는 슈퍼마켓을 나섰습니다. 도시에서 시장으로 가는 길은 차갑고 바람이 매섭게 불었습니다. 외로운 불빛들은 마치 세상 끝에 서 있는 외로운 사람들 같았습니다. 모든 소음이 그의 등 뒤에서 들려왔고, 어떤 때는 온밤 내내 란이 산의 어두운 그림자를 향해 차를 몰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면 그는 종종 삶의 고독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하숙집 골목으로 돌아갈 때마다 란은 늘 안개 속으로 스며드는 익숙한 모습을 보았다. 매일 밤, 한 노인이 마른 나뭇잎을 골목 끝에서 끝까지 쓸어내리며 몸을 숙였다. 빗자루 소리가 밤의 얇고 가벼운 조각들을 쓸어내는 듯했고, 란의 마음은 텅 비어 있었다. 바로 보더 서점 주인 노인이었다. 란은 그 서점이 수십 년째 그곳에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어쩌면 그래서인지, 동네 노인들은 그를 "보 씨"라고 불렀을 것이다. 란은 매일 밤 차가운 바람이 불 때마다 그에게 애정 어린 인사를 건넸다.
란은 문을 닫고 욕실로 들어가 얼굴에 물을 끼얹고 작고 김이 모락모락 나는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온몸이 축 늘어지고 축 늘어졌다. 가끔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란은 왼쪽 눈 밑의 점을 한참 바라보았다. 옛날 할머니는 그 자리에 점이 있는 사람은 눈물이 부족하게 자란다고 하셨다. 남을 위해 많이 우는 사람은 쉽게 감동하고 용서하기 때문에 배신당하기 쉽다. 이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눈물이 있다. 란은 자신의 눈물이 가짜라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저 외로움에 짠맛이 나는 눈물로만 보일 뿐이었다.
어둠 속에서도 꿈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
가끔씩 보더 서점에 낯선 방문객들이 찾아옵니다. 멀리서 찾아와 옛 책 냄새가 가득한 책들을 보 씨에게 선물로 가져왔습니다. 보 씨는 책을 팔지 않습니다. 마음을 담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는 반납 기한 없이 빌려주고, 돈도 받지 않습니다. 잃어버린 책이라고 생각되는 책들이 몇 년 후, 빌린 사람들은 옛 흔적을 따라 찾아 돌려줍니다. 보 씨는 각 책마다 고유한 삶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의 서점은 적합한 사람을 기다리는 책들을 위한 임시 휴식처일 뿐입니다. 좋은 사람의 손에 들어가면 그들 앞에 지평선이 드러날 것입니다. 사계절 내내 보 씨는 자신에게 믿음의 씨앗을 뿌린 사람들이 돌아오기를 여유롭게 기다립니다. 그는 그들이 돌아와서 몇 마디 말을 건네거나, 책 안팎으로 이야기를 속삭일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그의 책은 삶의 또 다른 부분을 갖게 됩니다.
란은 보 씨가 현관에 걸어둔 간판에 "서점" 대신 "책방"이라고 적힌 이유를 이해했다. 주말이면 마을 아이들은 보 씨와 헌책 더미 주변에서 수다를 떨곤 했다. 아이들은 책을 앞줄로 가져와 즐겁게 한 장 한 장 넘기고, 이슬 맺힌 푸른 꽃 위에 발을 흔들었다. 집 안에서 보 씨는 새 손님과 옛 손님과 자주 마주 앉아, 가운데 의자에 따뜻한 이슬 차 한 잔을 놓았다. 그의 셔츠 주머니에는 항상 볼펜이 꽂혀 있었다. 그는 안경을 코끝까지 살짝 내리고 손님들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미소 지었다.
***
그날 밤 늦게, 산길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돌아오는 내내 매섭게 불었다. 란은 몸을 웅크리고 몸을 떨며 운전했다. 이따금 이마를 만지작거렸다. 마치 붉은 석탄 앞에 앉아 있는 것처럼 뜨거웠고, 늦가을의 차가운 바람에도 불구하고 땀방울이 관자놀이를 타고 수천 개의 발톱처럼 흘러내렸다. 언덕 중턱에 다다르자 구름이 점점 더 높이 치솟았다. 마치 란에게 곧 덮칠 듯한 거대한 하얀 파도 같았다. 가로등은 갑자기 길고 허공에 떠 있는 사람 얼굴로 변했다. 란은 운전대를 꽉 잡았다. 땀이 쏟아져 손바닥을 적셨다. 길은 온통 어둡고 인적 없었다. 야행성 새들이 안개 속에서 잠든 나무들을 피해 대담하게 도망치고 있었다.
란은 어지러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손이 떨리고 정신이 없었다. 심장은 질주하는 말처럼 쿵쾅거렸다. 반대 방향에서 오던 트럭 한 대가 달려 지나가며, 트럭의 밝은 불빛이 란의 눈을 스쳐 지나갔다. 란은 갑자기 환각에서 깨어났다. 그는 마음을 가다듬고 가파른 경사로를 따라 차를 몰았다. 마을이 눈앞에 흐릿하게 나타났다.
란은 비틀거리며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갔다. 하지만 그는 돌아서지 않았다. 10월 하늘은 하얗게 안개 낀 들판 위로 천 개의 빗줄기를 쏟아냈다. 빗줄기는 눈에 보이지는 않았지만 바늘처럼 날카로워 란의 눈을 날카로운 고통으로 꿰뚫었다. 그는 아버지를 최대한 큰 소리로 부르려 애썼다. 그 부름은 멀리까지 울려 퍼졌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돌아서지 않았다. 계절의 끝자락, 그의 차가운 등은 말라붙고 지친 풀밭 비탈 뒤로 서서히 사라졌다. 란은 울음을 참으며 침묵을 지켰다. 그는 왼쪽 눈 밑의 검은 점에 대한 할아버지의 말을 떠올렸다. 아버지의 그림자는 지평선 너머로 사라졌다. 오후의 모든 색깔은 땅속 깊이 가라앉았다. 오직 란만이 은회색 10월 들판 한가운데, 고아가 된 목화나무 옆에 서서 폭우 속에서 잠든 듯했다.
***
- 어젯밤에 당신이 정신이 혼미한 상태에서 계속해서 아빠를 부르는 것을 들었습니다.
보 씨의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는 방금 약초를 끓인 냄비를 다 끓인 후였다. 베란다 앞에 약초를 심었다가, 병이 날 경우를 대비해 따서 말려 두었다. 그의 아버지는 약초상이었고, 어렸을 때 그는 아버지와 함께 산비탈에 약초를 캐러 자주 갔다. 약초 향이 방 안을 따스함으로 가득 채웠다. 마치 란이 할아버지의 먼지 쌓인 부엌으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어제, 란은 열쇠를 자물쇠에 넣기도 전에 문 앞에 쓰러졌습니다.
***
보 선생님은 책 세 권을 가져와 탁자 위에 올려놓고는 아이들과 미완성 이야기를 이어가기 위해 돌아섰다. "이 책들에서 뭔가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선생님은 천천히 말하며 돌아섰다. 란은 감사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그는 며칠 동안 집에 머물러야 했다.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약병에서는 마치 깊은 곳에서 문을 여는 듯 은은한 향기가 났다. 좁은 골목길 바깥으로는 푸른 안개꽃들이 낮게 떠도는 인간 구름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듯했다. 어쩌면 란은 보 선생이 남긴 책을 읽기도 전에 무언가를 발견했을지도 몰랐다.
그는 할머니의 눈동자 색깔처럼 먼 언덕 꼭대기를 바라보며, 기다리지 않는 척했지만 매일 오후 광활한 풍경을 바라보았다. 란이 아직 할머니 곁에 있을 때, 그는 종종 할머니 곁에 누워 할머니의 속삭임에 귀 기울였다. 할머니는 그의 전생에 아버지가 야생마였기에 이생에서는 다리가 잠을 자지 못했다고 말씀하셨다. 란이 태어난 날조차 어머니는 출산 후 피를 많이 흘리셨고, 아버지는 여전히 어딘가 떠도는 구름처럼 바쁘셨다는 게 사실일까?
***
란은 높이 솟은 책장들 사이에 홀로 앉아 찬장 꼭대기에 놓인 불상을 마주 보고 있었다. 보 씨는 방의 이 구석을 불교 철학과 동양 의학 서적들을 위해 따로 마련해 두었다. 란은 보 씨가 며칠 전 두고 간 책을 막 다 읽고, 조용히 앉아 멀리 사라져 가는 책의 메아리에 귀를 기울였다. 지난 며칠 동안 외로움은 점차 순수한 에너지의 원천으로 바뀌었다. 밤의 깊은 곳에서 잠들지 못했던 꿈들은 고요하고 고요한 곳으로 다시 흘러갔다. 바로 지금, 오래된 책 냄새가 방 안을 기억의 지평으로 확장하는 듯했다.
"아버지 말씀대로 할머니 댁으로 데려갔어요. 매일 밤마다 깨어나 네 이름을 부르곤 하셨지." 란은 아직 이모의 큰아들이 보낸 메시지에 답하지 않았다.
***
- 집에 가야 하나요?
- 당신이 나에게 그 질문을 했을 때, 당신은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알고 있었죠.
보 씨의 실루엣이 책꽂이 옆에서 생각에 잠긴 듯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지붕 위의 새소리는 너무나 또렷해서 세상의 어둡고 음울한 구름을 모두 걷어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란은 창문 쪽으로 돌아섰다. 푸른 이슬꽃은 계절의 끝자락에 서 있었고, 그 향기는 바람에 날리는 긴 털 사이로 퍼져 나갔다. 저물어 가는 오후 햇살 아래, 그것들은 하늘에서 내려온 진주 목걸이처럼 떠도는 빛으로 빛났다…
출처: https://thanhnien.vn/hoa-lam-suong-truyen-ngan-du-thi-cua-tran-van-thien-185251018183610472.htm
댓글 (0)